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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노작교육론』

kabbala 2009.02.25 19:31

2009년 2월 24일 화요일

박사학위 논문(「케르쉔슈타이너와 듀이의 노작교육론 비교연구」,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1995)의 '후속작'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방대한 자료들에서 주제와 관련된 내용만 간략하게 요약만 해놓았을 뿐 뭘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게 그저 '정리'만 해놓았다. 그래놓고 찾아보기는 빠져있어서 참조하기도 어렵다. ('후속작'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논문에 빠진 슈타이너가 포함되었기 때문인 거 같다.)

정리한 내용들을 내가 다 기억하기도 어렵고, 또 이런 식의 서술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주제와 교육학이라는 분야에 조금 익숙해졌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겠다.

'노작교육'은 독일어 Arbeitserziehung의 번역어로, 일본어 번역을 따른 거 같다. (몇십년전만 해도 '작품'이라는 뜻으로 '노작'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 말은 作業教育, 勞動教育, activity school, vocational school 등 여러가지 말이 사용된다. 이러한 혼란은 아마도 노작교육이 직능교육 등과 혼동되고, 더 큰 교육의 의미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인 거 같다.

육체를 사용해 머리 속의 구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 사회를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는 주장은, 매우 이상주의적이며 국가주의적인 발상이며, 또 보수적이다. 플라톤과 유토피아가 언급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소크라테스(Isocates, 436–338 B.C.)의 실용적인 주장 역시 사회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플라톤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작교육이 반발한 당시의 보수적인 교육도 그렇고, 현재의 한국도 그렇고 국가는 교과를 암기하는 주지주의적인 교육을 더 선호한다. 아마 이 방법이 수동적인 국민을 만들어 부려먹기 편하게 만든다고 경험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수도있겠고, 노작교육이나 예술교육 같은 것은 평가가 어렵고, 교사를 길러내기도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 예산 문제도 이러한 교육에 큰 걸림돌이 된다.

한국 교육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슈타이너의 경우는 이상주의를 넘어 신비주의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을 주로 뉴에이지 관련 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물병자리, 밝은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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