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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0일 화요일

일본어의 근대화 과정에 관한 책을 보니 한국어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관련 서적을 찾아봤다. 의외로 김윤식이 이 문제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

내가 워낙 국문학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국문학계에서는 예전부터 지적되던 부분이었나 보다. (가족 중에 국문학 박사가 있다.... 그래서 더 관심이 없는 듯) 임화의 '이식문학론'에서 정점을 이룬다. (57쪽)

구체적인 사실들은 전문적인 자료를 봐야겠지만 일단 김윤식의 책들을 먼저 보기로 했다. 관련된 주제의 책으로는 이 책, 『한・일 근대문학의 관련양상 신론』(2001) 외에도 『일제말기 한국 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해방공간 한국 작가의 민족문학 글쓰기론』(2006), 『일제말기 한국인 학병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2007) 등이 있다. 말년을 이 주제로 달리고 있다!

이 책이 1974년에 나온 『韓日文學의 關聯樣相』(一志社)의 보론으로 상정된 것으로 보아 지은이의 이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된 것 같고. 사실 일제 시기와 근대화라는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고, 근대 한국 문학이 생성된 공간 자체가 일본과 너무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양식을 보편성으로, 반제투쟁과 반봉건투쟁을 특수성으로 상정하면서 이들 관계항의 맞물림을 헤아리는 과제를 근대사가 안고 있다는 시선에서 본다면, 지난 세기는 이 나라 근대사에 형언하기 어려운 굴절과 상처를 남긴 것으로 인식됩니다. 연구자들의 시선이 이 거대담론에 이어진 이데올로기적 과제로 기울어졌음이 이 사실을 잘 말해 주었지요. (머리말 — 세기를 넘기면서, iii)

내가 국문학에 관심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말이 어려워서;;; 문학 하는 사람들이면 더 쉽게 좀 써줄 수 없나요;;;

아무래도 이 책의 집필 방향은 '문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거 같다. 나는 그보다 더 구체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따.

여기저기서 발표한 글을 모은 것인데,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그래서 쉽게 읽히는 것이 장점.

1. 최초의 한국 근대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 「血의 淚」의 작가 이인직은 도쿄정치학교(정확히 어떤 학교인지 모르겠다)에서 유학하였고, 미야코신분(都新聞, 지금의 東京新聞의 전신)에서 정치소설(Staatsroman, 국가소설 또는 국사소설로도 번역됨. 독일어 위키백과의 내용을 봤을 때 내 생각엔 '계몽소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을 배웠다. '루비'와 훈독과 음독이 섞여 있는 표기방식 역시 일본의 영향이다. 이에 대한 참고자료로는 조연현의 「개화기문학 형성과정고」(『한국신문학고』, 문화당, 1996)이 있고, 기호론, 표기체제상의 논의로는 최태원의 「<혈의 누>의 문체와 담론구조 연구」(서울대 석사논문, 2000), 사에구사 도시카츠(三枝壽勝)의 「이중표기와 근대적 문체형성」(연세대학교, 2000년 9월 29일).

(이인직은 친일의 선구자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다: 반민족문제연구소(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파 99인 3』(돌베개, 1993)에 실린 최원식의 「이인직 : 친일문학의 선구자」를 참고할 것. 인터넷에 이 글을 옮겨 놓은 곳이 많다: 1, 2)

2. 최종적인 지향은 서양의 문학이었겠으나, 구체적인 예는 일본의 작품이었다. 김동인의 '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안 되지만…'(『김동리전집 6』, 19쪽)에서 살필 수 있다. 일본어 표기법과 조선어 입말의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약한 자의 슬픔」에서 한자말을 조선어로 바꾼 것, (敎授->가르침) 과거형 종결어미의 일관성 등에서 드러난다.

3.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일본어식 용법을 더욱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러고보면 국어 교과서애는 대부분 이러한 국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 실린다. 이것을 '명작'이라고 들이대는 것보다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4. 당시의 소설은 사회개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동인의 '참소설'이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계몽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그가 『창조』지에 이광수를 초청하지 않은 것은, 이광수가 덜 계몽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5. '활사실', 즉 조선의 '현실'과의 관계.

6. 김윤식은 일제 시대 문학을 '이중어 글쓰기'(bilinguial writing, 왜 어떤 용어는 독일어고 어떤 용어는 영어냐?)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사무엘 베케트 등을 예로 들고 있으며, 일본 문예잡지에서 활동하는 조선 작가들의 이야기와 또한 소재로서 이중적인 언어 사용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런 관점은 나에게 매우 낯설다. 식민지 조선인에게 일본어는 당연히 외국어이고 불편한  것(수십년을 영어를 배워도 낯설어하는 한국인들을 보라)이거나 아예 모국어로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7. 친일문학에 대한 논의. 『인민문학』 창간호(1946)에 실린 이태준과 김사량의 논의. 친일 속에 녹아 있는 근대화에 대한 동경의 평가 문제.

김동인을 ‘『창조』파의 두목’이라고 표현해서, 국문학 하는 사람은 한글을 사랑하는구나... 했는데, 읽으면서 뭔가 나의 언어감각과는 잘 맞지 않는 표현들이 많다. 일제 때 태어난 사람이라서 그런가?

p.s 표지의 그림이 어쩐지 김윤식을 연상시키는데, 안석영이 그린 김동인이다.

관련 그림을 검색하다 1932~1933년에 『혜성』에 안석주(1901~1950)가 연재한 「가두에서 본 인물」에 실린 캐리커쳐를 모아 놓은 사이트를 찾았다:

2009년 2월 11일 수요일

'언어의 물질성',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2009년 2월 12일 목요일

유진오, 김사량은 일본어로 글쓰기를 했다. 조선의 풍경을 글에 담고, 조선어 식으로 쓰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의 소설 형식을 조선어로 표현하고자 하던 김동인, 염상섭과는 다른 고민을 가지고 있다.

김윤식은 김사량의 「교슈(郷愁)」(향수)(『金史良全集 2』, 河出書房新社, 1973)를 이중언어 사용자의 무의식까지 표출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한다.

(검색해보니 작년에 출판된 『김사량, 작품과 연구 1』(식민주의와 문화총서 7, 역락, 2008)라는 책이 있었다)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휴머니즘으로 '전향'한 경우가 일제 때도 있었다, 백석 등. 이런 종류의 일에도 역사성이 있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3부는 한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한국과 일본의 개별 작가들에 대한 '작가론'에 가깝다. 나카노 시게하루(1장), 김소운(3장), 오에 겐자부로(4, 5장), 에토 준(6장)

글들의 스타일이 비슷한 점이 있다. 대립되는 이항을 선택해서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중간을 검토한다. 뭐랄까 약간 기회주의적인 느낌.

2009년 2월 14일 토요일

'황군위문작가단'이 언급되면서 일제 말기의 상황으로 이야기가 종료되는 듯 했는데, 후반부에 자신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자신이 『李光洙와 그의 時代』(한길사, 1986)를 쓰는데 규범으로 삼았던 것은 바로 에토 준의 『漱石とその時代』였다는 것. 즉 자신도 과거의 조선 문학가들처럼 일본 문학을 규범으로 삼아 글을 썼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에토 준은 비평가로서의 자아를 확립하는데 지향점이 되었다는 것.

또 근대문학을 연구하면서 작가들이 유학했던 쿄토와 도쿄에 대해 자기 스스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애착은 자신이 직접 도쿄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현실화되었다는 것.

2009년 2월 15일 일요일

미학에 대한 자신의 관점, 야나기 무네요시 비판, 김소운의 손녀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런저런 글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이 책 자체도 어느정도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이 뒤에 나온 책들은 어떤 걸 덧붙였는지 모르겠다. 당장에 읽을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무엇인가를 비판하는 건지, 그냥 그렇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앞에서 말한 문학적이 아닌 거 같다는 말은 취소한다. 난 문학적인 글들은 요점 파악이 안 되서 잘 안 읽는다. 물론 정리된 글에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짧은 야나기 무네요시론은 공부를 더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나라는 야나기 무네요시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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