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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서예와 비슷한 점은? 두 장르 모두 ‘젊은 천재’가 드물다는 것이다. 연륜과 삶에 대한 통찰이 쌓인 뒤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건축사의 거장들 가운데에는 환갑 이후에 대표작을 남긴 경우가 수두룩하다. 오토 바그너는 60대에 빈 우체국 저축은행을 남겼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60대에 낙수장을, 70대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다.

구본준 (한겨레 문화부 기자), "건축보다 사람을 생각해요" (한겨레, 2008/01/26)

난 다르게 생각한다.

서예의 경우 작품의 평가가 명망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대가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블라인드 테스트로 평가하면 젊은 천재들 많이 나올 것이다.

한편으로는 서예는 몸에 익혀야 하는 재주라서 오랜 세월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역시 한편으로는 특정 스타일, 특정 규범, 명망있는 작가의 모방인 셈이다. 또 그만큼 창의력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 밖에 없다. 스타일에 대한 강조가 없다면 젊은 천재들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문외의 사람—심지어 같은 서예가라도—이 스타일에 대해 모르면 평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섬세한 재주라서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더래도,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음악이나 무용보다 수십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더래도 30대 후반이면 젊은 천재가 등장하기 충분한 나이이다. 한자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가가 기준이 될 수도 있는데, 조선시대 10대 후반의 수준이면 충분할 것이다.

결국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 하고, 또 그러한 평가 문화의 부재, 있다손 치더래도 서예의 스타일 내부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건축의 경우는 젊은 건축가가 대형 건축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

무명의 젊은 작가가 내놓은 작품을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 이 역시 예술적인 수준 뿐 아니라 기능적인 디자인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인데, 잘은 모르겠지만 건축 쪽도 20대 중반 정도부터 설계, 시공 일을 두루하며 10~15년을 보내면 기능적으로 못할게 없을 듯. 물론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일인 만큼 정치적인 이유도 많을 것이다.


* 인용문은 건축가 유걸에 관한 기사 앞부분인데, 아마도 이번에 창간한 건축 전문잡지 「와이드」에 유걸이 첫번째 특집으로 실렸기 때문에 나온 기사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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