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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착취론

kabbala 2007.03.17 19:23
하나는 소비자들이 물품을 살 때마다 착취당한다는 개념 정립이 우리의 직관에 심히 반한다는 것입니다. 코코아 농장에서 노예노동을 통하여 생산된 다국적 기업의 초콜렛을 덕분에 싼 값으로 사먹는 소비자들은 누구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직관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코트디부아르의 어린이를 착취한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일상용례에도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둘째로, 모두가 착취당한다면 착취론이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지요. 즉, 모두가 물품을 살 때 모두가 착취를 당한다면 결국 이 사회의 부정의의 핵심은 착취가 아니라 '착취할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의 기회구조에의 접근성 문제로 전환되게 됩니다. 즉, 소비착취론은 착취론이 아니게 되는 것이며, 이는 베버주의적 시장기회 불평등론과 동일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착취'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것 없이 곧바로 베버주의의 계층론으로 돌입하면 더 간명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다는 언명은 ~하지 않은 대조집합이 존재하지 않는 한 무의미한 진술이 되기 쉽습니다. ex) 모든 행동은 이기적이다.
셋째로 과학적 개념이라는 용어로서 무엇을 의미하셨는지 불분명하지만, 착취론 자체는 윤리적인 전제와는 떼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애초에 생산수단의 소유권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관점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생산수단의 소유권이 권리로서 온전한 것이라고 한다면 신고전학파식의 자본가는 이윤을, 지주는 지대를, 노동자는 임금을 얻는 모두가 행복한 시장청산만이 존재할 뿐이겠지요.
넷째로, 착취론에 대해서는 노동가치론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이론적 관점에서도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이론은 John Roemer가 그의 책 <A general theory of exploitation and class >에서 정립하였고, 제가 번역한 책인 Erik Olin Wright의 <Classes>에서 세련화되었습니다. 다음의 조건을 충족시킬 때 집단 S는 집단A를 착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만약 현재의 사회구성원들이 1인당 생산수단을 가지고 현재의 게임에서 철수한다면 집단 S는 나빠지고 집단 A는 나아진다.
(2) 집단 S가 집단 A를 지배한다. (부조관계와 구별)
(3) 현재의 생산수단 소유권 분포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집단 A가 모두 사라지면 집단 S는 나빠진다. (억압관계와 구별-억압관계인 경우에는 생산관계에서 배제되는 집단이 아예 사라지면 억압자들은 더 나아진다)
이러한 착취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착취 뿐 아니라 봉건제 사회의 착취, 그리고 현실사회주의 사회의 착취를 모두 일관된 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착취의 일반이론이라 불립니다.
노동가치론적 착취론도 봉건사회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반며에 소비착취론은 봉건사회의 착취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봉건사회의 농노들은 의식주를 다른 봉건영주 계급과 교환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자가생산하거나 같은 계급의 구성원이 생산한 것을 교환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봉건영주는 1인당 주어진 노동력(생산수단의 일종)을 넘어서는 노동력에 대한 권한을 법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고, 이를 통해서 착취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정치경제가 달라지면 아예 그 사회를 보는 분석틀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것은 베버주의적 사회학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는 설명틀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 아니라 오히려 이론의 장점으로 여깁니다. 어느 것이 매력적인지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착취론'을 학적 토대로 삼는다면 소비착취론은 그리 매력적인 출발점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착취당하니 임금을 달라는 식의 운동은 소비착취론에 기반한 것이고, 가부장이 여성을 착취하고 있으니 국가가 가사노동자에게 임금을 달라고 하는 주장은 억압과 착취를 구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고졸 생산직 노동자에게 세금을 걷어 대학생에게 임금을 준다거나, 아니면 미숙련직 맞벌이 부부에게서 세금을 걷어 전문직 가장의 가구 가사노동자에게 임금을 준다던가 하는 괴이한 일은 애초에 정합성 있는 착취론의 토대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라고 봅니다.

- 이한, "착취는 소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요"의 답글 (armarius: BBS, 2007/03/17)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하... '착취'에 대해 생각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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