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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다닐까 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평일 저녁시간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거... 특히 야근하는 직장은 다닐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고민이었습니다.

나이도... 과정을 다 수료하면 40댄데;;; 30대의 마지막 밤들을 한문수업 들으면서 보내야할까? 하는 생각...

등록금과 교재비도 의외로 부담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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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그만두더래도 일단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한문 교육기관 맛도 좀 보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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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로 운영되지만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돈벌이가 되는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빤딱빤딱하지요.

'한국고전번역원'은 물건너간 눈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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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조순이 원장이더군요; 다니기로 했으니 원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되나;

생각난김에 웹에서 검색해보니 1988년 경제부총리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후에, 서울시장, 민주당, 한나라당 총재, 국회의원 등을 거쳐 2000년 이후로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듯 하더군요. 정치활동 기간이 생각보다 짧고 덧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참고로 저는 조순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천상병 지도교수였다는 겁니다;;;

그다음은 뭔소린지 못알아먹겠는 조순+정운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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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름만 익숙하던 성백효 선생님 얼굴도 처음 본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아주 젊은 나이에 국역 사업에 투신하신 셈이더군요. 평소에 연세 지긋한 한학자를 연상했는데, 어쩐지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실거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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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껴보는 국민의례의 어색함;;;

p.s 조순 원장님 이력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육군사관학교 영어과 교관으로 1951~1957년 재직했는데, 이때가 묘하게 전두환(육사 11기, 1951~1955)의 육사 재학(?) 기간과 겹친다. (아니, 그보다도 이때는 한국전쟁 중이잖아?) 또 30대에 가족을 한국에 두고 9년이나 유학을 갔던 것도(1959~1967) 특이하다. 50년대 후반 미국유학이 많기도 했지만, 9년이라니;;; 거의 첫번째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미국유학 교수가 되었으며, 케인즈 주의를 수입했다고 한다. 내가 그간 너무 모르고 살았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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