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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 없는 사회』(1971)

kabbala 2010.05.13 20:09


2006년 12월 20일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

2010년 5월 13일 목요일
도서관에서 빌림. 1971년에 나와 주목을 받은 이 책은 여러차례 번역되었다.
  1. 황성모 옮김, 『탈학교의 사회』(삼성문화재단, 1978) — 小澤周三 옮김, 『脱学校の社会』(東京創元社, 1977) 중역.
  2. 김남석 옮김, 『교육사회에서의 탈출』(범우사, 1979)
  3. 양한수 옮김, 「탈학교의 사회」(『민중교육론: 제3세계의 시각』, 2장, 한길사, 1979) — 1~4장만 옮김.
  4. 김광한 옮김, 「탈학교사회」(『탈학교논쟁』, 1부, 한마당, 1984)
  5. 심성보 옮김, 『학교 없는 사회』(미토, 2004)
  6. 박홍규 옮김, 『학교 없는 사회』(생각의나무, 2009)
옮긴이는 한국의 반응이 느린 점(219쪽), 유독 이 『학교 없는 사회』 만 번역된 점, 처음의 잘못된 번역이 계속된 점(240쪽) 등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 또한 80~90년대에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적었음을 지적한다.

스페인의 경우, 프랑코 독재시대에 일리히는 보수적인 어용학문에 대응되는 유효한 무기로 사용되었으나, 프랑코가 죽고 독재가 끝난 뒤 그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 230쪽.

스페인을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1980년 전후의 한국에서도 일리히는 독재시대 교육에 대한 비판용으로 잠깐 읽혔다가 소위 허구적인 민주화 바람 속에서 금방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 감동은 일회용 독재비판 주사로 그치지 않았다. 나에게 그 감동은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사회 전체가 가장 극단적으로, 가장 포괄적으로, 가장 철저히 학교화되고 전문화된 곳이 한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탓이었다. — 231쪽.

관련 모임과 저술도 적지 않게 이루어졌던 거 같다. 난 일단 가장 최근에 번역된 박홍규가 옮긴 『학교 없는 사회』를 빌렸다.

이 책의 영어 원문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이분이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영어로 글을 썼다. 언어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한다. 책 내용 중에 스페인어 교육에 관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 역시 그의 재능 때문에 맡게 된 일이다.)
  • http://ournature.org/~novembre/illich/1970_deschooling.html
옮긴이는 ‘Deschooling’을 ‘비학교화’로 번역한다. (12쪽) 기존의 ‘탈학교’라는 번역은 대안교육 등으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일리히는 사회 제도 전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므로 적당한 번역인 거 같다. ‘Disestablishment’도 ‘폐지’가 아닌 ‘비국가화’로 옮긴다. (23쪽, 주1)

많은 학생들, 특히 가난한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학교가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그들이 과정과 실체를 혼동하도록 ‘학교화’한다. 이처럼 과정과 실체가 혼동되면 새로운 논리, 즉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더 좋은 결과가 생긴다든가, 단계적으로 올라가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식의 논리가 생겨난다. 그런 논리에 의해 ‘학교화된’ 학생들은 수업을 공부라고, 학년 상승을 교육이라고, 졸업장을 능력의 증거라고, 능변(能辯)을 새로운 것을 말하는 능력이라고 혼동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학생의 상상력까지도 학교화돼, 가치 대신 서비스를 받아들이게 된다. 즉 병원의 치료를 건강으로, 사회복지를 사홰생활의 개선으로, 경찰보호를 사회안전으로, 무력균형을 국가안보로, 과당경쟁을 생산적 노동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 결과 건강, 공부, 존엄, 독립, 창조 자체는, 그런 목표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강변(强辯)되는 제도의 수행보다 열등한 것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병원, 학교, 기타 시설을 운영하는 데에 더 많은 자원을 퍼부어야 건강, 공부, 존엄, 독립, 창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Many students, especially those who are poor, intuitively know what the schools do for them. They school them to confuse process and substance. Once these become blurred, a new logic is assumed: the more treatment there is, the better are the results; or, escalation leads to success. The pupil is thereby "schooled" to confuse teaching with learning, grade advancement with education, a diploma with competence, and fluency with the ability to say something new. His imagination is "schooled" to accept service in place of value. Medical treatment is mistaken for health care, social work for the improvement of community life, police protection for safety, military poise for national security, the rat race for productive work. Health, learning, dignity, independence, and creative endeavor are defined as little more than the performance of the institutions which claim to serve these ends, and their improvement is made to depend on allocating more resources to the management of hospitals, schools, and other agencies in question.

이 책에서 나는 그러한 ‘가치의 제도화’가 반드시 물질적 오염, 사회적 양극화, 심리적 무능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세가지 차원은 지구의 붕괴와 현대적 비참을 초래하는 과정이다.

In these essays, I will show that the institutionalization of values leads inevitably to physical pollution, social polarization, and psychological impotence: three dimensions in a process of global degradation and modernized misery.

— 1장, 23~24쪽.

뭔가 심금을 울린다. 한편으로는 70년대의 아련한 이상주의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복지 관료는 사회적 상상력에 대한 전문적・정치적・재정적 독점을 주장하며 무엇이 가치 있고 가능한지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데, 이러한 독점이 빈곤의 현대화를 초래하는 원흉이다. 모든 간단한 요구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만들 때마다 새로운 계급의 빈곤이나 새로운 빈곤의 정의가 나타난다. — 27쪽.

Welfare bureaucracies claim a professional, political, and financial monopoly over the social imagination, setting standards of what is valuable and what is feasible. This monopoly is at the root of the modernization of poverty. Every simple need to which an institutional answer is found permits the invention of a new class of poor and a new definition of poverty.

빈곤의 현대화는 미국 도시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이곳의 빈곤대책은 빈민의 의존성, 분노, 욕구불만, 그리고 더 많은 요구를 만들어낸다. 또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이곳의 빈곤대책은 그것이 일단 현대화되면 금전에 의한 처리만으로는 저항에 부딪히게 돼 제도의 근본적 혁신을 요구하게 된다. — 29쪽.

It is probably most intensely felt in U.S. cities. Nowhere else is poverty treated at greater cost. Nowhere else does the treatment of poverty produce so much dependence, anger, frustration, and further demands. And nowhere else should it be so evident that poverty-once it has become modernized-has become resistant to treatment with dollars alone and requires an institutional revolution.

일단 그러한 제도에서 일하는 전문가의 위계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원이 도덕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사회에 믿게 한다면,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도 복지제도가 지닌 본래의 파괴성을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의 빈민은 깨달아 가도 있다. 미국의 도시 중심부에 사는 빈민은 그들의 경험에 비추어, ‘학교화된’ 사회의 사회복지법이 만든 오류를 밝힐 수 있다.

They are making the discovery that no amount of dollars can remove the inherent destructiveness of welfare institutions, once the professional hierarchies of these institutions have convinced society that their ministrations are morally necessary. The poor in the U.S. inner city can demonstrate from their own experience the fallacy on which social legislation in a "schooled" society is built.

… 즉 현재 건강, 교육, 복지를 다루는 제도에 대한 재정지출을 중단하면, 그 제도의 무능화라는 부작용에 의해 결과한 빈곤의 증대를 막을 수 있다. — 29~30쪽.

… Only by channeling dollars away from the institutions which now treat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can the further impoverishment resulting from their disabling side effects be stopped.

… 그 적절한 사례는, 1965년부터 1968년 사이에 3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약 6백만 명의 아동을 불우한 조건에서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학교에서 소비된 것이다. … 그럼에도 이러한 ‘불우한’ 아동의 공부는 거의 개선되지 못했다. 그들을 중산계급 출신 동급생과 비교하면 그들은 더욱 더 후퇴했다. — 30쪽.

위의 이유 2가 말하듯 자금이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은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체제상 특히 그러했다는 점도 사실이다. 학교는 그 자체의 구조로 인해, 특별취급을 하지 않으면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자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것에 저항한다. 특별한 교육과정, 교실의 분리, 특정 학생에 대한 더 많은 교육시간의 부여는 더 높은 비용으로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 32쪽.

역설적이게도, 보편적 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신념은, 학교가 극소수 사람들에게만 봉사한 나라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나라들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 34쪽.

… 그러나 나아가 아동 1인당 지출되는 비용은, 전 국민의 10퍼센트에 이르는 가장 가난한 부모의 아이들에 비해 가장 부유한 부모의 아이들은 10배의 공공비용을 확보하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유한 아이들이 더욱 긴 학교교육을 받고, 대학교의 1년은 고등학교의 1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용이 들며, 거의 대부분의 사립대학교는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세금에서 나온 재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 37쪽.

강제적인 학교화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양극화한다. 또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국제적인 차별제도로 계급화한다. 카스트처럼 나라들은 계급화돼 그 교육적 권위는 시민의 평균취학연한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1인당 국민총생산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더욱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 38쪽.

이 책을 읽으며 한국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옮긴이의 머리말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교육기회의 평등화란 사실 바람직한 것이고 동시에 실현가능한 목표다. 그러나 이를 강제적 학교화와 동일시함은 영혼의 구제와 교회를 동일시하는 것과 같다. 학교는 현대화된 프롤레타리아의 세속종교가 돼왔고, 과학기술시대의 빈민에게는 그들의 영혼을 구제한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실현될 수 없다. 국민국가는 학교를 채택해 모든 시민을 등급화된 졸업장을 따게 하는 계급화된 교육과정 속에 강제로 끌어들였으나, 이는 과거의 성인식 의례나 성직자 계급승진과 다르지 않다. 현대국가는 선의의 학생지도나 취업조건을 통해 교육자가 판단을 강요하는 의무를 인정해왔다. 이는 스페인 왕들이 그 신학자들의 판단을 중남미 정복자나 종교재판을 해 강요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 38~39쪽.

능력과 이력의 결부를 단절시키기 위해 개인의 학력 조사를 금지해야 한다. 이는 정치단체나 종교단체에의 소속, 혈통, 성적 취향, 인종적 배경에 대한 조사를 금지하는 것과 같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 물론 법률로도 학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중단할 수 없고, 독학한 사람과의 결혼을 강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법률은 부당한 차별을 단념시킬 수 있다. — 42쪽.

대부분의 공부는 우연히 얻는 것이고, 심지어 대부분의 의도적 공부도 계획적으로 가르친 결과가 아니다. 보통 아이들은 자신의 국어를 우연히 배운다. 물론 그들의 부모가 관심을 가지면 더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우연한 사정에 의한 것이지, 연속적인 가르침에 의한 것이 아니다. 가령 외국에 있는 조부모의 집에서 살았다든가, 여행을 했다든가,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탓이다. 읽기에 능한 것도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활동의 결과다. 폭넓게, 또 즐겁게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그렇게 하도록 배운 탓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 의문을 갖게 되면 그들은 쉽게 그런 환상을 버린다. — 43쪽.

… 학교교육보다는 비용이 덜 드는 반복훈련은 지금, 부자여서 학교에 가지 않거나, 군대나 대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직무교육을 받는 자들의 특권이 되고 있다. 미국이 교육의 비하교화를 서서히 진행하는 계획을 추칮하는 경우, 무엇보다도 반복훈련에 유용한 자원은 제한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누구든 그 생애의 어느 때나 수백 개의 기능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공공비용으로 배우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게 될 것이다. — 45쪽.

기능교사의 ‘시장’을 개방하면 공부의 기회가 대폭 증대될 것이다. 이는 적절한 교사가 적절한 학생을 만나는 것에 의존한다. 그 경우 학생은 교육과정에 구속되지 않고, 지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충분히 자극받아야 한다. — 45쪽.

책을 대략 통독했는데, 한번 읽고 끝날 책이 아닌 거 같다.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선언적인 간단함이 있어서 쉽게 정리가 안 되는 거 같다. 일리히의 다른 책들을 기회가 있으면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거 같다.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권말에 옮긴이의 해설(218~351쪽)이 있어서, 일리히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역시 너무 선언적인 것들이라서, 자세한 논의는 일리히의 글을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거 같다.

옮긴이 해설 중에 관련된 교육학자(?) 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다. (4장 일리히와 아나키즘 교육사상) 메모해뒀다가 기회가 되면 책을 읽어봐야 겠다.
  • William Godwin — E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 and its Influence on Modern Morals and Manners, 탐구자: 교육, 의례, 문학에 관한 성찰(무슨 책인 지 모르겠음)
  • 프루동
  • Max Stirner — Das unwahre Princip unserer Erziehung
  • 톨스토이
  • Francisco Ferrer — 이훈도 옮김, 「모던 스쿨의 기원과 이상」(『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말라』, 2002)
  • 간디 — 『부자가 있는 한 도둑은 굶주리지 않습니다』
  • Vinoba Bhave — Pfade in Utopia
  • Martin Buber
  • Herbert Read
  • Paul Goodman — Compulsory Mis-education and the Community of Scholars
  • Everett Reimer — 『학교는 죽었다』
  • John Holt — 『존 홀트의 학교를 넘어서』(Instead of Education)
  • Paulo Freire — 『피압박자의 교육학』
  • 크로폿킨 — 『빵의 쟁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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